시간의 끝을 위한 사중주

9월이다. 8월에 너무 많은 일이 있었고 여전히 비가 오고 있다. 7월에 대해서도 다 쓰지 못했는데 8월에 대해서 써야하고 9월이다. 6월도, 5월도, 4월도 그랬고 3월도, 하루 종일 글자만 붙들고 있어도 다 쓰지 못할 거 아닌가? 글 쓰는 사람들 신기하다. 모든 걸 쓰는 게 아니라 한 줄로도 아득하게 만들 수 있다—음악처럼. T는 계속 글을 쓰고 있을까? 홈페이지를 만들고. 계속 기록하고 붙드는 사람들은 임계가 있을까 아님 계속 시작하는 걸까. 뒤로 밀리는 임계. 망실되는 것. 하지만 집중력을 유지하다 보면 열리는 순간도 있고.

6월에 들은 건지 7월에 들은 건지 시간의 끝을 위한 사중주. 5월 22일에 들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가 하나의 단위. 8월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었지만 9월부터다. 사실 7월부터 그러고 싶었다. 보이차, 복숭아, 홈페이지, 8/17에 한번 쓰려고 했었다. 홈페이지가 만들어지고 나서

(개인 아카이브로서) 홈페이지가 생겼다. 언제 생겼지? 부깽과 불광에서 밥을 먹은 뒤에. 그게 8/7이었다. 7/30에 가온이랑 천마산 캠핑 갔다가 폰이 침수되었고(물에 빠뜨린 것이 아니라 계곡에서 물놀이하고 젖은 옷가지 물건과 같은 비닐 가방에 넣었다) 8/1에 수리점에서 복구불가 진단을 받고 부깽이 폰을 구해주셔서 8/2에 가지러 갔는데 정작 유심이 들어있는 기존 폰을 집에 두고 가서. 다시 증산에 온 김에 밥을 동네에서 먹고—가게가 세 곳인가가 닫혀 있었다. 화려각에 갔지—카페에 갔다가 동네를 보여드린다고 산에까지 올라갔다. 5층에서 차 빼달라고 하셔서 마지막에 좀 서둘러서 내려왔지만 무덤이 있는 길과 산신제를 지내는 우물도 빼먹지 않았다. 내려온 입구에 쉼터 노견들이 자원봉사자들과 산책하러 나와 있었다, 일요일이라서.

G님과 영등포–대림에 가서 정산소종 아이스크림 그리고 세 종류의 녹차를 마셨고, 그대로 부깽과 숨어있는 책방에 갔다가 성산동까지 걸어갔다가, 젤리같은 습기 상자 속에서 망원동까지 걸어갔다. 요지는 부깽님과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다는 것이다. 언어가 몸이 되는 방식들—신촌에서 홍대로 그 산울림에서 지하철역으로 가는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가며. 그대로 성산동까지 갔다—, 7월 내 부깽이 석논 교정을 봐주셨기 때문에 앞으로 단행본을 어떻게 쓸 것인지 얘기하기도 했고 스스로 논문을 마무리하면서 글쓰기를 직면하겠다는 서원을 했다. 서원은 서원인 것이고 뭘 정말 시작하지도 못했고 살면서 늘 그랬나 싶은데 전과는 다르다. 다르다.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물질적인 인과에 의한 시간상 제약이 있다. 정말 시간이 부족하다기보다는 감정적인 구속에 가깝다. 물론 시간이 실제로 부족하기도 한데 문제는 늘 그런 감각에 시달리고 이것이 내 글쓰기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에큐멘이 생기고는 주로 에큐멘에 기록했다. 8/19 전후로 다시 아팠다.

아무것도 못 하는 나날이 길어지면 한강의 회복하는 인간(Convalescence)(2013)을 자동으로 주문처럼 반복해서 떠올린다. (여러 연상 기억들 중 하나)

한강 소설에 나오는, 식음을 전폐하고 종잇장처럼 누워서 죽어가다가 돌연 집 문밖으로 나서 집요한 의지로 진실을 향해 휘청휘청 그러나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여자들

8/10 회의, 남아동 마무리하는 글 올린 것이 13, 7/30, 8/8, 아무튼 8월 중순까지도 그랬고. 그 후로는 25일 발표회 준비할려고 애를 썼다. 19일에 선생님과 연락하고 도서관. 청소

꿈들

꿈. 상한 비늘 한 조각 한 조각을 물이 든 플라스틱 캡슐에 모았고 빛났다. 물속에 있는 물고기가 빛나는 이유

꿈. 그의 집에서 내 짐을 정리해 옮겼다. 고양이는 나오지 않았고 그의 동생이 어린 시절 모습으로 울고 있었다. 방에서 짐을 빼니 생각보다 남는 짐이 적었고 부엌에는 별로 내 물건이 없었다. 245, 240 사이즈의 녹색 운동화. 동생이랑 나눠 신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신어봤는데 45도 40도 맞았다. 부엌 서랍에 다리미, 방 하나인 줄 알았는데 거실도 있었고. J가 꽤 예쁘고 그럴싸한 원목 전자 피아노를 선물이라고 설치해 두어서 내가 이걸 왜 여기 두냐고 내가 가져가겠다고 다시 해체했다.

꿈이 정확하다. 27일에는 꿈에서도 이사를 한다. 타로는 뒤를 돌아보지 말고 조용히 아는 곳으로 나아가라고 한다.

완즈와 전차. 에너지가 있다. 그런데 뭔가가 부대낀다. 26일의 연락과 28일의 통화, 30일에 월경을 시작했다.

쓰레빠 끌고 핸드폰 없이 코코 없이 산에 올랐고 때를 삐끗했는지 해가 짧아졌는지 예상보다 삽시간에 어두웠다. 집에서 아주 가까운 익숙한 곳인데도 무서웠다. 무섭다는 건 뭘까.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마세요." 말의 몸통 속에서 피를 뒤집어쓴 듯, 씻기는 듯 개운하기도 했다. 무서움으로 정화하는 힘.

검은 산을 지나면 막 정비해서 미국 사진처럼 번쩍거리는 공설 운동장이 나온다. 헤드라이트 조명 그림자 속에서 더 어두워 보이는 나무 계단에 고양이 무리가 있었다. 샛길이 없어 지나가려는데 고양이들은 점점 더 아래로 아래로 흩어지고, 한 마리가 뒤에 남아서 애처롭게 울었다. 나쁜 놈이 된 거 같았다.

이 동네에 딱 맞춰진 기분이 든다. 떠나야 하는 사라질 동네에서. 내가 터를 찾아든 것인지 적응을 잘하는 것인지 모른다.

24일 즈음이고 발표회 전날이구만? 우파니샤드까지 꺼내 읽고

부깽이 한밤중에 불광천까지 와주신 것이 8/15다. 공문은 8/7에 불광에서 작업해서 넘겼다. 그때도 부깽이 계셨고 그날도 복숭아를 받았다. 트럭에서 산 복숭아 봉지를 자전거에 걸고 걸었다. 그렇다. 다시 불광천에서 그 복숭아를 건네받을 때 황급히 여러 개를 부깽의 가방으로 옮겨 담기는 했지만 난 정말 눈물이 났다.

몸을 쓰려고 애썼다. 옥상, 창이 보이도록 놓은 책상에 앉아서 보고 또 본 풍경. 이 집이 없어질 거라고 집주인이 계약서 재작성하며 특약 넣었을 때부터 하루하루 이 집을 잘 보내주려고, 그렇게 살고 있다. 5월 말, 6월에는 정말 창밖이 눈부시게 빛났고 집 전체가 하루 종일 빛나며 바람이 불었다. 바람 속에서 내 몸도 빛나고 있었다. 더디게 글을 씹어 삼키고 뱉어 애기들에게 먹이는 쌀죽 같은 걸 끓이고 있었다. 논문이 버티는 축이 되었다고 타로도, 챗지피티도 말했다. 왜 이게 이제야 끝났을까. 왜 이게 지금 끝났을까. 부깽이 “지금인 까닭이 있다”고 하셨는데. 모르겠다. 시간은 예전에도 지금도 부족하다. (문체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사랑의 단상을 읽었기 때문이다)

인지적이고 신체적인 문제를 포함해서, 특히 이 시간 감각—”다 쓸 수 없다”는 압도감과 막막함—이 야기하는 문체의 특징을 직면하자고 생각했다. 문체의 문제가 다루어진다면 생각 자체가 벼려지지 않는 그 답답함도 다룰 수 있다. 글쓰기는 단순히 생각을 옮겨 담는 그릇이 아니라 생각을 강력하게 한정 짓는다. 장애물, 구속구, 나를 비판하는 것, 그 생각을 빤하게 눈앞에 내려다 놓고 검수하면서 “정말 그거야?”라고 삐딱하게 쳐다보는 것, 그러나 그 문체가 없다면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말하는 것은 괜찮다, 말하는 것은 내 몸에 한정되지 않고 함께 얘기하는 사람들과 주변 환경의 물성까지도 자원으로 사용할 수가 있다. 난 그걸 좋아하고 즐기고 유연하게 놀 수 있다. 그러나 고독한 글쓰기는, 오늘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이것이었어, 여기까지였어, 아 만족스럽다라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차라리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글을 진전시키는 데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알지 못하는 것의 실체를 더 크게 느끼며, 그것을 다 파고들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족이 신체적인 무기력으로 의식을 급강하시킨다.

다시 태어난 생일이나 돌잔치, 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모두가 날 축하했던 논문 발표회(“말을 불러내는 말이 되어야 하는데”). 쓸 수 있을까. 쓸 수 있다. 쓸 수 없어도 쓰는 것이다. 수치심과 탈력감 속에서, 하찮고 보잘것없는 목숨으로 이번 생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경험하고 간다고 생각한다. 평가하지 않는다. 평가하는 주체가 아니다.

발표회에 대해서 제대로 쓰고 논문을 나누기 위한 연락도 계속 돌려야지 라고 생각하며 8/27 샛강에서 놀았고 28 부깽 집에 있었다. 정리하고 버리고 비우고 나누고 폐기물 스티커 붙여 내리고 마대자루 샀다. 당산 주민들 바이브. 죽집에서 빙하호가 녹아 무너져 내리는, 세상의 천장이던 호수가 무너져 내려 창공과 땅의 경계가 사라지고 높이가 사라져 죽음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티비 뉴스로 방영되고 있었다. 제주에서 연쇄살인 혐의가 있다는 뉴스와 함께였다. 블랙윙 세 자루를 세 사람을 위해 샀는데 필기감이 좋아서 한 다스 사고 싶다. 뒤에 지우개는 없어도 되겠지만 없으면 아쉽겠지. 모닝 페이지에 연필이 닳는 속도와 지우개가 닳는 속도 중 어느 것이 더 빠를지 같은 걸 쓰고 있었다. 지우개가 닳는 속도가 빠르니까 리필을 팔고 있지 않았겠어? 하지만 기본으로 탑재된 지우개도 상당히 길쭉하다.

오이 샌드위치를 해 먹었고 빵은 커피를 부른다. 그렇게 오늘 여름 커피를 마시겠다는 일념 하나로 장을 봤다. 동선이 도서관 책 반납하고 두레생협 갔다가 파랑 베이커리 들렀고 카페 여름, 굿윌 스토어까지 들렀다. 장 본 것으로 점심 먹고 저녁엔 동생과 먹었다.

동생이 완주에서 지원금 소진한다고 그걸 차를 사 왔다. 내가 5/22에 지유명차 다녀온 이야기를 유심히 듣고 기억한 것이다. 완주 지유명차에서 보이차라고 샀다는데 대홍포라고 적혀있던데. 보이숙차는 거의 다 마셨다. 제주 유동룡 미술관에서 산 검은 옹기 재질의 가장자리가 길고 날렵한, 모던한 처마같은 잔으로 마셨다. 오늘 그 잔에 딱 어울릴만한 티코스터를 여름에서 샀다. 녹청, 아님 비둘기색, 녹색도 파랑색도 아닌, 둘의 경계인, 물 빠진 색. 십 대 시절 입던 코트의 색깔인데 난 그걸 학교 규정에 맞게 회색이라고 우기며 입고 다녔다. 동생의 축하와 가족의 축하, 졸업식은 당연히 가지 않았고 학위증도 수령해야 하는데, 학과에서 졸업 선물이라고 망고를 보내서 감사한 마음에 학과 사무실로 배송시켰다. 졸업했다고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끝도 없고 생각이 무의미하다.

에큐멘이 만들어졌으니 당연히 헤인 연대기를 읽었고, 편집자님께 받은 비비언 고닉의 연애 시대의 종말. 편집자는 직접 만든 책을 선물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멋지다. 이런 책을. 이런 책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알고 이미 읽은 데다가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는 사람들. 음반도 책도, “채울 것”이 많다.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며 시간은 한 순간 속에 전부 있다.

이 세 작품 모두 입안에서 비린 피 맛을 느끼는 비범한 여자가 쓴 소설이다. 이 작가들은 덫에 걸려 옴짝달싹 못 하는 짐승이 된 느낌이 어떤지, 정신이 번쩍 드는 초상을 그려낸다. 그렇지만 이 소설 가운데 어떤 것도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인물의 내면에 그 이상 깊이 들어가지는 못한다. 단지 저항의 형상과 감촉을 보여줄 뿐이다. 그런데 대체 여자들이 원하는 게 정확히 뭘까? 무엇 때문에 이렇게 저항하는 걸까? 내면을 둘로 나누는 선은 어디에 그어지며, 어떻게 해서 조건부 항복이 이루어지나? 이 주제를 다루는 데 필요한 거리 두기가 안 된다. 혹은 경험이 충분하지 못하거나. p.13

탁월한 은유에는 자기 이해를 약속하는 공통의 경험이 담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알게 되리란 약속, 혹은 알 수 없거나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으리라는 약속이, 문학에서 한때는 자연을 통해, 다음에는 신을 통해, 다음에는 사랑이라는 은유를 통해 주어졌다. 지금으로서는 사랑이 자연과 신이 갔던 길을 따라간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문학에서나 삶에서나 완전히 ‘홀로’ 던져져 표류한 채 새로운 힘을 얻게 해줄 은유적 요소를 찾으려고 우리가 쓰는 책 속을 더듬는다. p.27

그러지 않을 수 있었을까?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회의, 우울, 자신감 부족은 맞서 싸우지 않으면 점점 악화되고, 이따금 찾아오던 증상은 반복 삽화가 되고 결국 만성질환으로 이행한다. 병이 공간을 차지하고 공기를 잠식하고 에너지를 소모한다. 경험의 양분이 되어야 할 에너지가 살지 못한 삶을 키운다. 살지 못한 삶은 고분고분한 짐승이 아니다. 살지 못한 삶은 거대한 분노에 휩싸인 작은 짐승처럼 도사린 채 목숨을 겨우 이어갈 만큼만 허락한다. 때로는 그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결국 암살자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p.52

작년 4/8 숨책

작년 샛강

어제

사랑하는 사람들과 공동체가 한데 모인 자리. 이런 자리들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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