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잠

⟪인터스텔라⟫를 보았고, 벤야민 세미나를 들었고, 생명철학에 관한 강연을 들었다.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에 요가. 일주일 전 일요일에 요가를 듣고 에소테릭 힐링 강연을 듣고 간올한테 갔었다. 월요일에 하자센터 목공방에 갔다. 거기에서 만든 의자, 라고 불리우는 가구의 미메시스를 들고서 역곡에 갔다. 화요일, 수요일. ⟪액트 오브 킬링⟫과 ⟪헝거게임⟫을 보았고 막걸리를 마셨다. 귤을 먹었고. 일요일에 요가 끝나고 H에 갔다가 유니클로에 갔다가 서점에서 ⟪계속해 보겠습니다⟫를 읽었다. 역곡집에서 잠을 잤다. 너를 끌어안고 계속해서 잠을 잤다. 별내에 갔다. 오리백숙을 먹고 꿀자몽티를 마셨다. 월요일 아침에 돼지국밥을 먹고 치과에 갔다가 역곡에 갔다. 수요일에는 채플을 듣고 도서관에 있다가 두리반에서 칼국수를 먹고 세미나에 갔다. 세미나가 끝나고 할리스에 갔다. 텔레그램을 확인하다 보니 ㄷ에게 화목 중 연락한다고 해놓고 완전히 잊고 있었다. 홍차를 조금 받기로 했는데.

가능하다면 계속해서 잠을 잘 것이다. 너를 끌어안고. 너는 포근하고 좋은 향기가 나고 부드럽고 따뜻하다. 하얗고, 예쁘고, 귀엽다. 창문도 열려있었고, 너는 내가 이불을 뺏어가서 춥다고 했다. 일인용 이불을 둘이 덮는다. 성산동에서도 연남동에서도 상주에서도 그랬다. 너는 팔베개를 해준다. 네가 팔이 아플까 봐 어깨를 내려서 손을 잡고 자는데 깨보면 다시 어깨를 베고 있다. 너의 목, 이마, 귀, 어깨, 겨드랑이를 감고 잔다.

그 집에서는 불에 탄 사과 냄새가 난다. 전기장판을 켜놓고 외출해서 라텍스가 녹아내렸고 그 냄새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바깥에서 너를 만나면 나는 그 냄새를 맡는다. 가방에서, 옷에서, 책에서, 벽지에서, 장판에서, 무늬에게서, 그 냄새가 난다. 나는 섬유로 된 것을 압축 비닐 속에 넣는다. 고양이 털과 냄새의 화학분자로부터 격리하기 위해. 원래 수위실이었던 곳을 개조한 집. 내가 상주에 있는 동안 너는 이사를 했다. 초여름 과일이 즐비한 시장 골목을 따라 걸어갔다. 나는 또 역곡역에서 너를 만났겠지. 역곡은 나에게 특별한 장소이다. 북부역의 에스컬레이터가. 처음 그 집에 갔을 때 참 깨끗한, 네가 느껴지는 집이었다. 너는 나를 초대하려고 신경 써서 집을 정리했다. 너는 나와 다르게 정리한다. 나는 그 정리법을 좋아하는데, 그것을 망쳐놓기도 한다. 신발이 얼룩지는 것을 싫어하는 너를 볼 때의 느낌. 네 옆얼굴에서 늘 느끼는 느낌. 어쩐지 나와 함께 있지 않을 때 너의 느낌.

여름에 네가 유구에 있을 때 나는 그 집에 좀 있었다. ㅌ도 왔었다. 우리는 홈플러스에 갔다. 치과에 갔던 날 밤이었다. 나는 사랑니를 뽑는 대신 스케일링만 하고 왔다. 양모가 들어간 바삭바삭한 이불을 샀고 사과 향과 오렌지 향의 소취 기능이 있는 방향제를 샀다. 돌아올 때 비가 왔다. ㅇ 씨의 집이 근처였다. 박스를 머리에 이고 왔다. 너는 그 이불을 돌돌 말아서 주머니에 넣을 수 있다는 점을 마음에 들어 했다. 무늬가 오줌을 싸지 않도록, 오래 외출할 때에 보관할 수 있다면서. 새 이불 위에 예전 시장에서 산 보라색과 하늘색이 섞인 꽃무늬 누비이불을 깔았다. 그리고 그 이불의 숨이 죽지 않도록, 그 위에 앉지 않도록 조심했다. 네가 새것을 아끼는 모습을 좋아한다. 새것을 깨끗하게 하는 모습을. 삼각대라든지, 접이식 키보드라든지, 인터넷에서 시킨 것들.

너는 우리가 함께 있으면 잠만 잔다고 싫어한다. 영화를 보거나 잠을 자거나, 밥을 먹는다. 햇빛이 부족한데, 내일 햇빛을 쬘 것이다. 날이 맑을지 모르겠다. 너와 햇빛이 들지 않는 방에서 잠을 잔다. 너를 끌어안고. 그리고 밤에 밖으로 나온다. 햇빛을 쬐는 것이 중요하다. 밤에 밖으로 나오는 것도. 잠을 자는 것은 중요하다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그냥 일어난다. 그것을 지속시킬 것이다. 너를 끌어안고 잠을 자는 일. 우리가 함께 있을 때 지나치게 잠을 자는 것을 우리는 불안해한다. 우리에게는 할 일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할 일들을 무화시키면서 서로를 끌어안고 잠을 자 왔다. 그것을 우리는 불안해 한다. 그리고 흡족해하지는 않는다. 잠을 자는 우리와 불안해하는 우리가 있다. 영화를 보는 우리, 밥을 먹는 우리와 불안해하는 우리. 사람들을 만나는 우리. 우리는 별내에서 돌아오는 버스에서, 그리고 육 호선 전철 안에서 서로 기대어 졸았다. 그러다가 다퉜다. 나는 네가 나를 연락을 잘 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드는 게 싫다. 그리고 또 어떤 일들을 나한테 떠넘기는 게 싫다. 자신은 노력하지 않으면서. 관망하고 있으면서. 타인처럼 나를 바라보는 게 싫다. 나는 네가 타인처럼 나를 바라보는 게 싫다. 나를 어떤 속성과 설명으로 만드는 게 싫다.

우리가 한 쌍의 다람쥐를 색칠하고 있을 때 꽃처럼 피어나는 너의 다람쥐를 나는 보고 있었다.

카테고리 새와 별태그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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