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산과 언덕에 추억이 많다. 내가 태어난 장소가 늦가을부터 초봄 사이 저녁의 어느 동네 산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동네 산들은 쌍둥이처럼 느낌과 감각을 공유하는데,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어느 동네 뒷산 혹은 앞산에 오르면 나는 그 일부가 되도록 허락받는다. 그들은 나를 환영하며 자신들의 일부로 여기고 비밀을 열어 보여준다. 내가 그들 가운데 태어났음을 그들이 알고 있으며 나의 탄생에 그들이 증인으로 입회했었다는 증거.
일례로 오늘, 쌍둥이와도 같이 닮은 한 쌍의 너구리를 보았다. 벤치와 가로등과 초목에 둘러싸여 무대와 같이 놓인 산의 어느 부분을 응시하는 동안—’이곳에서 첼로를 연주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멜로디를 고안하는 동안—너구리 두 마리가 차례로 나타났다. 처음에는 개라고 생각해 주인이 뒤따라오기를 기다렸는데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 동안 그것들의 생김새가 너구리 형태를 띄고 있음을 인식했다. 나는 아주 쉽게 그것들을 현실의 일부로 포함시켰다. 나 역시 오래전 그들의 탄생에 입회했었으므로. 머릿속으로 첼로를 연주하면서, 평행봉 주위를 오가며 몸단장을 하고 먹이를 찾는 너구리를 응시했다. 그들은 나를 한 그루 나무처럼 대했다. 그들은 나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나를 만나러 왔다. 우리들은 잠시 어디도 아닌 장소에서 아직 아무것도 아닌 음악을 들었다. 노을에 감싸여, 건물 유리창이 빛나고 도로 위 헤드라이트가 빛날 때.
처음 성산에 올라가는 입구를 찾던 날 직각으로 꺾인 골목으로 거대한 냉장고 박스가 막 배송되어 입구가 마치 막다른 골목처럼 보였다. 입구는 각도와 경사로 인해 완전히 가려져 있었다. 한 사람이 감춰져 있던 입구를 찾아냈다. 등나무로 만든 우아하고 긴 의자가 놓인, 그리고 무덤이 자리 잡은. 성산2동은 동네 전체가 언덕 위에 올라 앉은 지형으로, 한강의 지류 홍제천(모래내)에 놓인 다리를 건너서부터 언덕이 시작한다. 유년 시절 하교길 자전거를 끌고 오르던 언덕처럼 마을버스가 지나가는 중심 도로가 노을을 마주 보게 되어있다. 노을에 바쳐진 영토처럼.
내가 열 살 때 입주했던 아파트는 황무지를 비추는 노을 속에 곧게 서 있었다. 재개발 지구에 비교적 일찍 세워진 아파트였기 때문에. 그 건물의 이름은 극동極東 아파트로 극동 건설에 의해 세워졌다. 극동 건설은 1954년 남대문 시장 신축공사를 맡았고, 1956년 서울 시민회관을, 1967년에는 21층 짜리 대연각 호텔을 지었으며, 1970년대 아산 방조제와 서울 지하철 1호선, 남양 방조제, 1969년 경부 고속도로, 1970년 포항 종합 제철항 등 정부가 발주한 사업을 했으며, 한국 고속철도 부산역과 울산역, 서경주역, 한강의 방화대교,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 빌딩을 지었다. 대연각 호텔은 1971년 12월 25일 대연각 호텔 대화재 사고가 발생했던 장소이다. 아파트 위의 허공으로부터 매일 저녁 불타는 노을이 내려앉았다. 노을이라고 불리우는 새처럼. 그 속에서 나는 먼 과거와 가까운 미래에 대한 상념에 빠져들었다.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발자국이 겹칠지, 이 건물을 어떻게 철거할 것인지…
1997년부터 2005년까지 나는 그 아파트의 십 층에 살았다. 그러고 나서 다른 아파트의 십오 층으로 이사했다. 그다음에는 아마도 구 층 혹은 십사 층(동생에게 정확한 층수를 물어본 후 수정할 것이다)으로. 나는 아파트 층수에 따른 중력 차이를 계산하는 법을 알고 싶었다. 높이 역시 육체에 각인되는 감각이라 믿었으므로. 유리창으로 노을이 쏟아져 들어오고 도로에서 헤드라이트가 빛나면 나는 창가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