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시간

검은 화면으로 사진을 찍었다. 봄날 같은 날씨였으나 식물은 월동 준비를 하고 검거나 붉거나 보랏빛인 열매만을 남긴 채 말라가고 있었다. 나는 언덕을 뒤덮은 열매의 이름을 알고 싶어서 끄트머리를 채취했다. 그것을 코사쥬처럼 앞주머니에 꽂았는데 조금씩 부서져서 전시관을 나올 때는 사라져 있었다. 제1전시관에서 마지막으로 청동기 제정일치 시대의 방울을 보았다. 도자기를 보았다. 진품인 것들을. 인간이 시간적 공간적으로 현존해 왔음을 설득하려고 배치된 사물들을. 그것들의 사물로서 맥락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들어간 이태원 베트남 식당에서 ㅎ를 만나는 일이다. 그는 머리를 밀고 더플코트를 입고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와 똑같은 안경을 쓰고 있다. 그는 그에게 의미 있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오랜만에 외출했으며 한 시간 동안 거리를 헤맨 끝에 그 식당으로 향했다. 그는 자신의 테이블을 떠나 우리 테이블에 잠시 앉는다. 당연하다는 듯이. 그에 힘입어 우리는 지하철 환승역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눈다. 영화 이후 영원히 변화해버린 시간 감각에 관하여. 인간을 영원히 떠난. 벤야민이 새로운 아름다움을 느끼는. 2005년도처럼 우리는 미학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너는 그 세계를 다시 시도할지도 모른다.

그는 나를 설득하듯이 시간은 미래로만 흐르며 결코 돌이킬 수 없다고 선언했다. 마치 나를 과거로부터 떼어내듯이. 그리고 수년 후에 나는 너로부터 시간이 흐르지 않으므로 미래란 허상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나는 그 순간을 붙잡기 위하여 너에게 입을 맞춘다. 이전과 이후를 분리하듯이. 아이네이아스 책점의 결과는 귀의 중단, ⟪달로⟫를 읽으면 ⟪달로⟫를 읽어야했던 때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는 오늘을 예언하면서 그것이 환상이라고 말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모든 물질적 진행을 그대로 품은 채로 돌아가는 것. 모든 물질적 진행과 무관하게 존재해온 기다림과 한 몸이 되는 것. 이것은 시간의 균열이고 곧 이 문은 닫힐 것이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카테고리 새와 별태그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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