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충동이 아니라, ‘전체성/총체성’의 충동이다. 아카이브 작품은 ‘의미의 깊이와 전망’에 대한 욕망이다. 작품은 ‘자신의-타자의 말’ 아카이브다. “이해되는 주체와 이해하는 주체의 복잡한 상호 관계. 창조된 흐로노토프와 이해하는 흐로노토프와 창조적으로 갱신하는 흐로노토프의 복잡한 상호 관계. 중요한 것은 개성의 창조적 핵심을 찾아내고 파고드는 것이다(창조적 핵심 속에서 개성은 삶을 지속한다, 즉 불멸한다).” 즉, ‘타자성의 극복’. 이것은 ‘먼 컨텍스트’, 곧 ‘전체성/총체성’을 전제하며, 그 방법론은 ‘대화’다.
이것은 바흐친의 메타언어학이다. 이 삶을 시작할 때 나는 너의 말의 수신자, 번역자, 해석자였다. 그리고 너는 사라졌다. 사라진 말인데, 어떻게 계속 도착하는가. 그래서 네가 수억 광년 거리 우주의 끝에 있다고 생각했다. ⟪별의 목소리⟫처럼. 하나의, 필연적인, 에로스-폭력에 다다라 나는 왜곡되었다. 각자 시간의 톱니바퀴가 돌아갔다. 나는 개인방언의 언어학/고고학/계보학자가 되어, 과거 순간순간의 외적인 컨텍스트로 돌아가 가장 순수한 메시지를 추출할 수 있는 목소리를 찾아내고 싶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목소리들의 메타언어를 창조한다. 나는 모든 목소리들을 포함하는 목소리가 된다. 이것이 내 존재 이유이고 꿈이다.
나에게는 도서관이 필요하고, 삶이 필요하고, 훈련된 의식과, 글쓰기를 위한 도구가 필요하다. 이것을 유지하는, 철학적인 신체가 필요하다. 이러한 자기 인식은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존재로서 나와 불화한다. 나에게는 학점도, 어학성적도, 면허도, 포트폴리오도, 활동그룹이나 문학그룹도, 매체도, 등단도, 상담할 만한 교수도 없다. 그러한 것들에 나는 부족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처음과 같이 언제나 항상 영원한’ 욕망을 가진 내가 있다. 가장 폭력적이고 까다로운 독자를 설득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 당신을. 나는 게임처럼, 당신의 마음을 고양시키고, 충족시켜야 한다. ‘자신의-타자의 말’ 아카이브의 타자들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배신하면서.
동생의 생일이다. 나는 생일 선물을 사러 나갔다. 가게들이 문을 닫기 전에. 그러나 정작 집에 돌아와 너를 만났을 때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너의 친구가 준 선물을 보았다. 친구는 너에게 구두 한 켤레를 선물했다. 나는 너의 눈화장을 깨끗이 지우라고, 그리고 가끔 방에 향초를 켜라고 포인트메이크업리무버와 향초를 샀다. 그걸로는 부족한 것 같아서, 혹은 목요일 밤 아홉 시의 홍대입구에서 내가 너에게 선물하고 싶은 것을 찾기 힘들었으므로, 시와 3집 콘서트 표를 예매할 것이다. 이주 후 토요일에 공연이 있다. 첫눈이 오기 전이나 온 이후에. 때때로 너의 방에서 함께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 싶었다. 영화도 보고. 너는 계속 소설을 쓰고 있을까. 너는 더 이상 미성년자가 아니다. 나는 생일이 삼월이어서, 대학 입학 후에 바로 스무 살 생일이었다. 그때 무엇을 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너도 그 자리에 있었겠지. 칠 년 전 초등학교 육 학년이었을 때의 네가. 열세 살 네가. 너는 그때의 기억이 있을까. 나는 나의 스무 살 생일날 열세 살이었던 너의 모습이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다만 이 년 전 겨울의 너를 기억한다. 홍대입구 버스정류장에서 헤어질 때. 우리는 좋아서 하는 밴드의 공연을 보았다. 그때 너는 열여덟, 고삼이 되기 전. 내가 상주로 가기로 결정한 뒤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빠에게 떠난다고 들었어.”라고 너는 말을 했는가. 나의 열셋, 열여덟, 스무 살과 너를 겹칠 수 없다. 열여덟 살에 너의 방이 생겼지. 엄마의 생일에 집에 갔었다. 2012년 9월 25일 생일에. 그때 네가 거기 있었다. 생일날 찍은 사진에 우리들이 찍혀있을 것이다. 나는 너의 얼굴을 기억할 수 없다. 내가 상주에 있는 동안 네가 편지를, 메일을 보냈는가. 문자를 했던가. 나는 답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너는 방에서 맥주와 소주를 마신다. 가끔 담배도 필 것이다. 너는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지하철을 타고 온다. 너는 지갑을 잃어버렸다 다시 찾는다. 생일 하루 전날, 아직 미성년자였으므로 후불 교통카드 기능이 들어간 체크카드를 만들 수 없다. 나는 아침에 깨어 너에게 천삼백 원어치의 동전을 준다.
사실 나는 너에 대해 잘 쓸 수 없다. 나는 너를 기억할 수가 없다. 네가 기억되지 않는다. 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픈 기분이 든다. 나는 너를 기록해 주지 못했고 아침밥을 차려주지도 도시락을 챙겨주지도 못했다. 너를 데리고 여행을 가지도 못했다. 나는 그럴 수가 없다. 우리는 어떤 사이인가. 우리는 한 집에 산다. 우리는 오래 한집에 살았다가, 떨어져 있었고, 다시 한집에 산다. 우리는 늘 엇갈렸다. 우리는 한 번도 같은 학교를 다닌 적이 없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같은 부모로부터 유전자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었다는 것. 같은 싸움 소리를 들었다는 것. 여름휴가를 같은 곳으로 갔었고 같은 티비 채널을 보았고 같은 아파트와, 같은 자동차의 기억. 나는 너와 그것에 대해서 한 번도 얘기를 나눠본 적이 없다. 올해가 되기 전까지는. 네가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는. 그전에 너는 너무 어렸고 그 후에는 내가 너무 어렸다. 너는 나와 맥주 한잔을 하고 싶다고 썼다. 우리는 서촌에서 술집에 갔었다. 그리고는 가지 않았다. 나는 너의 언니로서는 할 말이 없는 것 같다. 나는 너와 한집에 사는 사람으로서 너와 대화를 하고 싶었다. 너는 어땠을까. 너는 말하지 않았다. 나는 두려웠지만 너는 괜찮았다. 나는 네가 괜찮아서 고마웠다. 너는 나에게 준다. 한결같은 것을. 나는 그 한결같은 것에 운다. 너는 나의 아버지와 닮았다.
나는 너의 세계에 참여할 수 있을까. 너는 언제나 나의 세계에 환영받는다. 나는 너를 거절할 권리가 없다. 네가 태어났을 때부터 너는 나의 세계로 들어왔던 것이다. 그러나 나의 시간은 앞으로만 흐른다. 너는 언제나 나의 세계로 들어오고 나는 너의 세계로부터 밀려난다. 세계의 시간이 그렇게 흐르고 있다. 우리 사이에 놓인 칠 년의 시간. 그것은 앞으로 좁혀질 것이다. 세계의 시간에 따라. 네가 더 이상 미성년자가 아니라는 것이 갑자기, 아쉽게 느껴진다. 너는 이제 내가 집에 가면 있는 동생이 아니다.
너의 중학교 졸업식 때 우리는 라페스타에 가서 화분을 샀다. 왜 우리 둘만 갔던 것일까. 너의 고등학교 졸업식 때 나는 코트를 입고 아주 짧은 머리를 하고 힐을 신고 갔었다. 엄마가 천안에서 왔다. 나는 아스튜디오에서 꽃다발을 사 가지 못해 아쉬웠다. 졸업식 선물로 무엇을 주었는지 모르겠다. 너는 염색을 하고 머리를 잘랐다. 엄마랑 나랑 너는 칼국수랑 만두를 먹었어. 그때는 이미 우리에게는 화정에 집이 없었어. 너는 성산동에서 학교로 갔다. 너는 십일월부터 성산동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어. 수능이 끝난 후부터. 네가 수능을 보기 전에 나는 찹쌀떡을 사 갔지. 동교동 삼거리에서. 그때 라디오 수업 모임이 있었다. 우리는 함께 천안에 내려갔다. 그리고 천안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무료하게. 폭설이 내렸다. 올해에도 눈이 내릴 것이다. 나는 그것을 기적이라고 느낀다. 교통사고가 났다. 엄마가 너를 낳고 나서 아팠던 것처럼. 이십 년. 너는 시간의 한 단위다. 지금으로부터 일 년간, 너는 시간의 한 단위일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기념한다. 앞으로 삼 년 후에 내가 서른 살이 되면 그것을 또 기념하겠지. 거기에는 별로 의미가 없다. 우리 가족에게 이십 년은, 너는, 시간의 한 단위이다. 칠 년. 이십 년. 이십칠 년. 너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산 것일까. 그것이 나에게 이토록 감춰져있다는 것에 나는 놀란다. 우리 가족에게 너의 삶은, 감춰져 있다. 그 누구의 것보다 더욱. 그리고 우리는 너를 사랑한다. 너를 위해서 이 가족은 유지되고 있다. 너는 이 가족을 유지하는 힘이다. 너는 홀수를 싫어한다. 너는 늘 홀수와 친구가 된다. 너는 울고 나는 그 울음으로부터 멀리 있다. 지금 이렇게 방문이 가까운데도. 너는 눈물이 많고 나는 눈물이 별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