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적인

“인간적인 것은 동물적인 것이에요”, 동물권을 연구하는 동료분이 해준 말이 뇌리에 박혔다. 나는 그때 개를 한 마리 임시보호하고 있었다. 검은 개였다. 날씬하고 조용한 개였다. 나는 개의 감정과 표현이 사뭇 ‘인간적’이라는 부분에 놀라 그분께 이야기했고 그분은 저렇게 답했다.​

인간이 지니는 애정의 뿌리에 동물적인 것이 있다. 인간 애착의 발달심리학으로 포획할 수 없는 기본적인 방향성이 있다. 생명체라면, 아니 식물도 이런 것을 지닐까? 광물은? 하나의 광물은 다른 광물의 옆에 서기를 바랄까? 하나의 사물은 다른 사물의 곁에서 멀어지는 것을 아쉬워하거나 두려워할까? 애초에 아쉽다거나, 두렵다거나, 하는 식의 ‘느낌’에 자아나 의식을 결부시키지 않고 철저한 감각으로 접근한다면, 바란다는 것의 가장 근원에 접촉한다면, 그것은 인연의 그물로 연결되어, 제자리로 돌아가고자 하는 탄성일 것이다. 그물을 가장 멀리 잡아당긴 후에, 그 장력에 우리는 여러 이름을 붙인다. 그럼에도 가장 멀리 잡아당겨진 것은 무엇일까. 가장 최초에 당겨져 최후까지 돌아가기를 주저하는 것. 두 짐승이 몸을 맞대 옹송그리고 햇살 아래서 낮잠에 들 때 그 몸의 가장 깊은 곳으로서 표면에 일렁이는 것. 윤곽에 윤곽이 겹쳐져 그리는 등고선. 찬장에서 컵을 꺼내 사용하고 무엇이 담겼다가 비워내지고 이리저리 물푸레나무 테이블 위를 배회하다가 싱크대로 옮겨져 물에 씻긴 뒤에 건조대에 얹혔다가 다시 손을 타고 찬장 위에 놓이기까지. 그 놓인 자리는 전과 같지 않다. 자리에서 비껴난 자리만큼의 시간, 완벽히 일치하지 못하는 간격으로서 시간, 그 시간을 타고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가장 멀리 당겨졌으므로.

카테고리 새와 별태그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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