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영원
이다음 숨을 쉬는 것은 처음 해보는 경험이다. 정말일까? 세상에 처음 해보는 경험이라는 게 있을까? 니체의 영원회귀 이론에 따르면 모든 것은 끊임없이 반복한다. 내가 이 타자를 치는 것도 이미 벌어졌던 일이다. 오늘의 해가 뜨고 지는 것은 처음 해보는 경험이다. 정말일까? 아니라 해도, 이렇게 지리멸렬한 나날이 이미 벌어져 무한 영원히 반복되는 것은 범우주적 낭비가 아닐까?
당신이 말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처음 해보는 경험이라고. 헌데 이미 내가 당신을 사랑했던 적이 정녕 없을까? 인간 축척에 비교해 지나치게 거대한 우주가 일기일회(一期一会)라는 것은 지나친 과잉 아닌가? 그 뾰족한 모서리를 벼려낼 이유가 우주 어디에 있단 말인가? 만화경 속, 프리즘 속 굴절된 이미지가 반복되고 반복되고 반복되고, 내가 당신에게 건넨 한마디가 고장 난 레코드처럼 되풀이…
망각에 의해서건 상실에 의해서건 어쨌든 거대한 기억상실의 체제 속에서 현재 내가 인지할 수 있는 의식 범위에 한정한다면 모든 것이 처음 해보는 경험이다. 인간의 수명은 과거를 한정한다. 미래 또한 한정한다. 타들어 가는 유전자 꼬리 규모 안에서만 인간은 기억을 축적한다. 물론 융에 따르면 인간의 수명을 초과하는 무의식 더미라는 게 있어 우리가 땔감이 되고 있다고도 한다. 그런데 말입니다, 의식할 수 없는 의식에 꼭두각시처럼 매달려 짧게 경련하고 스러지는 생이라는 거. 겨우 그 경련에 너무 많은 처음이 부착되어 있지 않나요.
처음 태어나고 처음 죽기. 나는 처음에 압도되는 것이 싫다. 몸에 익어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 처음 걷는 길에서 나는 그 정보량에 겁에 질린다. 실제로 뇌는 처음 걷는 길을 훨씬 오래 걷는다고 인지하고 그 길을 되짚어 걸으면 금새다. 길의 모든 세부들이 작은 곤충의 눈에 비친 이미지처럼 한없이 확장되고 무한 영원한 의미를 띄는 것이 공포스럽다.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 길가에 핀 한 포기 잡초, “새의 산란기이니 둥지를 밟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표지판, 하늘의 구름이 움직이는 무한 영원한 패턴과 그것을 반사하는 바다 표면의 색채, 나는 그것들을 ‘무시하는’ 데 길이 들었다. 모든 처음을 무시하는 것, 책상 위 사물이 첫 번째로 처한 배치, 각도, 마찰들을 무시하는 것. 그 모든 것들을 범주화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미친다. 보르헤스의 푸네스처럼.
하지만 나는 처음으로 죽어가고 있다. 나라는 존재로서는 처음이다. 어쩌면 처음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나의 무지로 인해 이것을 처음이라고 말한다. 당신과 걸은 길에 날아다니는 잠자리, 그를 향해 부리를 벌리는 몸집이 큰 검은 새, 장맛비에 불어버린 물과 융성하는 식물들, 그 한 장면이 내게는 처음이다. 그 길을 두 번 걸을 수가 없다는 것, 나뭇잎 한 장의 무게에 압도당하는 우울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이 발에 납을 단 듯 무겁고 준엄하다는 것. 당신을 두고 체념하듯 돌아서는 걸음이 내게는 모두 처음이다. 이제껏 단 한 번도 헤어져 본 적 없는 것처럼 소스라친다. 두 몸이 거리를 두고 떨어질 수 있음을 처음 깨달았다는 듯이, 두 몸이 원래 하나가 아님을 처음 발견했다는 듯이.
처음이라는, 무지로 인한 감각의 경련을 나는 사랑이라 믿는다. 당신 얼굴에 지는 모든 그림자의 조각과 사랑에 빠진다. 나의 무능은 결코 그것에 익숙해질 수 없기에, 나는 당신을 매 순간 잊고 또 발견한다. 당신의 발걸음이 내는 소리, 당신의 머리칼이 뻗친 각도, 당신이 놀라 경직된 표정과, 깊고 지난한 우울에 침윤되어 완전히 탈진한 신체. 당신은 언제나 내게 처음 걷는 길이고 그 길은 무한 영원히 계속된다.